PEOPLE

오랜 시간 지켜지는 아름다움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가지와 곡식이 자라는 너른 밭을 풍경으로 한적한 낭만이 느껴지는 곳에 다녀왔어요. 이천에 위치한 오덴세의 유약 실험실 ‘ods LAB’은 서정적이고 또 어딘가 진중한 태도가 갖춰진 공간인데요. 다소 딱딱하다고 느낄 수 있는 장소인데 어째서 이런 몽글몽글한 마음이 드는 걸까요. 오늘은 오덴세 인스타그램에서 지난 일 년간 조금씩 보여드린 실험실의 역할과 오덴세가 추구하는 도자기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 박명준 소장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오랫동안 도예가(도자산업)로 활동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다양한 브랜드를 거쳐 오면서 지금의 오덴세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학부시절까지 합하면 도자기 한길만 걸어온 게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요. 한때는 도예작가의 길을 걸으려 했지만 도자기 회사에 취업하면서 전통과 예술, 산업도자의 경계를 넘나들며 지금까지 업을 이어왔는데요. 첫 회사에서 세계 명품 도자 브랜드들과 경쟁하며 여러 다이닝 도자기를 디자인하고 개발하던 경험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 같아요.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브랜드와 ODM을 진행하고 꺼져가는 한국 도자기 시장의 불씨를 살리고자 했죠. 그러던 중 글로벌 K-푸드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과 만났고, 한국의 식문화와 어울리는 식기를 개발한다면 우리 한국 도자기의 가능성이 더욱 열릴 수 있단 확신에 더욱 집중했어요. 현대 한국 식문화에 걸맞은 식기와 트렌드를 접목해 2013년 7월 오덴세라는 브랜드가 탄생했고, 성공적인 론칭 후 아틀리에 노드, 레고트, 시손느, 누프레임 등 최근까지 오덴세와 한 팀이 되어 다양한 컬렉션을 만들고 있어요.

오덴세에서 탄생하는 모든 컬렉션은 모두 소장님 손을 거쳐가야만 하네요.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결국 저는 도자기 전문가로서 오덴세 팀에 합류했고, 오덴세와 그 밖의 B2B 거래선에서 기획되고 디자인되는 제품은 R&D 과정을 거쳐야만 양산화되어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에 세라믹 제품은 저를 포함한 ods LAB의 과정이 있어야만 상품화될 수 있어요. 결국 질문과 같이 거쳐가야만 하는 것은 맞는 말씀이네요.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트렌드 캐칭 된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신제품을 기획하고, 도자기가 디자인되기 전 오덴세 팀과 함께 아이데이션을 통해 기획안을 발전시켜가요. 최종적으로 MD와 제품 디자이너의 손에 디자인과 컬러 콘셉트가 정해지면 ods LAB에선 컬렉션에 따라 4가지 방향의 연구와 개발이 진행돼요. 물레와 CNC, 3D 프린터 등 목업 작업을 진행해 샘플 몰드를 제작하고 제품 성격에 맞는 성형 방법을 모색해 샘플을 제작하는 형태 개발 단계, 소지의 성격이나 색상에 따라 그릇의 깊이감과 질감이 달라지기 때문에 신중하게 연구하는 소지(흙) 개발 단계, 도자기 콘셉트에 맞는 다양한 표현 기법을 테스트해 보는 표현 기법 개발 단계와 도자기에 옷을 입혀주는 유약 개발 단계가 있어요. 특히 유약 개발 단계는 유약의 성격을 구분 짓는 기초유를 개발하고 기초유에 색을 입히는 실험을 적게는 수십 회 많게는 천회 가까이 실행해요. ods LAB만의 비밀 레시피와 노하우를 녹여내 오덴세만의 질감과 색상을 만들어갑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오랜 기간 도자기를 다루면서 아직도 늘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인데요. 도자기는 물과 흙, 불의 하모니로 재결합해 ‘자기’라는 새로운 물성으로 탄생되는 하나의 작품인데, 천연의 광물과 여러 재료들이 고온의 가마 속에서 불협화음이 나지 않게 제어해야 하는 점이 가장 어려워요. 자기는 다른 재공품들처럼 생산되는 모든 공정을 들여다볼 수 없어요. 가마는 1250도 고온 속에서 12시간을 기다려 굽고 다시 12시간을 식힌 뒤 열어 볼 수 있기 때문에 제품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워요. 오덴세 컬렉션들은 타 브랜드와 차별점을 찾기 위해 더 공예에 가깝게 표현하고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양산에 있어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항상 떠안고 있어요. LAB에서 수 천 번 실험을 거듭해 양상이 확정되어도 소지와 유약 개발은 끝난 게 아니라 오히려 그때부터가 시작이죠. 생산 공장 별 가마 분위기를 맞춰가며 불량 요인을 줄이고 일관되고 완성된 제품 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미세조정과 안정화 작업이 필요해요. 물론 현재 판매되는 모든 제품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기민하게 신경을 쓰고 있죠.

ods LAB이 아직은 생소한데요. 오덴세의 역할과 ods LAB의 역할에 차이점을 들려주세요.
오덴세 팀은 트렌드를 서치하고 캐칭 해 나가면서 상품을 기획과 디자인해 완성된 상품을 마케팅하고 시장에 선보이는 역할을 한다면, 저희 ods LAB은 디자인된 제품의 형태를 양산화에 최적화해 개발하는 과정과 LAB이라는 네이밍대로 도자기 소재인 소지와 유약을 개발하고 양산화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여기에 도자기 관련 기술 노하우와 신규 유약 소재를 발굴하고 연구해서 그 기술과 데이터를 축적, 기록하며 한국에 몇 남지 않은 장인들의 기술을 사명감을 가지며 이어나가는 일이 이곳의 가장 큰 역할이지 않나 생각해요.

다른 공방에는 없는 ods LAB만의 아이덴티티가 있나요?
현재 대한민국 도자기는 해방 이후 형태적인 측면에서 수많은 도예가와 디자이너의 양성, 그리고 3D 기술까지 더해져 도약적인 발전을 이뤘어요. 그에 비해 소재 개발과 기법에 대한 개발은 정지 상태일 정도로 미미한데요. 유럽과 일본, 중국은 꾸준한 소재 개발과 동시에 양산 자동화 기술까지 더해져 발전해 나갔다면, 대한민국은 그것보다 적게는 50년, 많게는 100년 이상 뒤처져 있다고 봐요.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곳에선 실행하기 못해 정지돼있는 소재 개발을 위해 랩을 설립했어요. 흩어져 있는 소재 기술을 내재화하면서 데이터를 축척하고 직접 기초유부터 차근차근 실험해 연구한 결과물을 제품에 적용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은 국내 다른 도자기 제조사와 확실한 차별점이자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죠.


오덴세에서 만들어지는 컬렉션의 텍스처와 컬러가 정말 트렌디해요. 세련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비결, 살짝만 공개해 주세요.
짧게 말씀드리면 도자기에 대한 진정성과 성실성이 비결의 산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LAB이 만들어진지 이제 만 2년이 지나고 있어요. 연구소 설립 이전에 기술이 없어서 외부의 조력에만 의지하던 소재 개발을 짧은 기간에 내재화하고 원하는 텍스처와 컬러를 자체 기술력만으로 현실화할 수 있던 비결은 2년간 1만 개 이상의 시편을 만들고 실험을 거듭한 노력의 결과죠. 이제는 여기에만 멈추지 않고 조선시대 관요 가마터를 돌면서 옛 도공들이 만들었던 파편을 하나하나 모으고 있는데요. 트렌디한 텍스처와 컬러도 중요하지만 우리 전통의 소재와 유약의 느낌도 시간을 들여 실험하고 그 속에서 방향을 찾고 재현하면서 점차 발전하고 있어요. 세련된 제품을 만드는 비결은 따로 없어요. 호기심을 갖고 진정성 있게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시편을 모아 연구한다는 점에서 정말 진심이 느껴지네요.
오덴세는 다양한 소지를 개발하고 발굴해 제작돼요. 소지만 하더라도 테라파인소지 외 6개 이상의 소지를 제품에 적용하고 있는데, 각각 다른 소지에 같은 성질의 유약을 입혀보면 소지 고유의 밑 색과 각각의 소지가 함유하고 있는 원료에 다르게 반응하여 6가지 모두 다른 색상과 질감으로 구워져요. 조금만 조건이 달라져도 모두 다른 느낌의 완성품이 나와서 이 모든 경우의 수를 데이터화하기 위해서 시편을 모아 지속적으로 연구하죠. 이렇게 연구하다 보면 이 시편들처럼 우리 브랜드도 100년까지 이어져서 나중엔 세계 최고가 되지 않을까요?

현재 한국 도자기 문화와 상황에 대한 소장님의 견해도 듣고 싶어요.
현재는 유럽산 도자기에 밀려 전통의 국내산 도자기 시장과 문화가 퇴색되고 있다고 봐요. Mordor Intelligence 자료와 도자센서스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도자기 시장 규모는 약 758조 규모에요. 그런데 국내 도자기 시장 규모는 약 5천 5백 억, 그나마 메이드 인 코리아는 2천 2백 억 원 정도로 상당히 작습니다. 이마저 기술 개발 및 시설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낙후돼 가고, 제조 환경 악화로 인력 수급마저 어려워 규모는 점차 줄고 있지만.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오덴세는 탁월한 트렌드캐칭과 마케팅 그리고 기술 개발을 통해 11년째 약진하고 있는 점에서 자부심이 있어요.

도자기 시장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오덴세가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있을까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라는 말처럼 힙트레디션한 컬렉션 개발을 통해 글로벌에서도 인정받는 최고의 K-다이닝 브랜드로 계속 성장하길 바라고 있어요. 그 뿐만 아니라 도자 상품 외에도 유약 소재를 브랜드화 하고 오덴세가 만든 유약이 전 세계의 도예가와 산업 현장에서 사랑받았으면 해요. 글로벌 세라믹 머트리얼 브랜드로 각광 받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장님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도자기란 무엇일까요?
늘 생각하고 고민해요. 예술과 산업의 기로에 서서 두 가지 요소를 모두 만족 시킬 수 있는 작품과 같은 상품을 만들고 싶다고! 누가 봐도 아름다울 수 있는 보편적인 미감을 담아낼 수 있는 도자기, 그릇 자체로도 좋지만 쓰임이 있어 어떠한 음식을 담아도 식감을 살릴 수 있는 그런 도자기를 제작하고 싶어요. 너무 이상적인가요? 이게 그저 꿈 같은 얘긴 아니라고 봐요. 시대별 우리 조상들이 만든, 서민부터 왕실까지 사용했던 도자기 유물들을 국립 중앙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어요. 저는 그 유물들의 형태와 기법들을 천천히 들여다보면서 '오래된 미래이자, 이상적인 도자기'라는 생각에 잠겨요. 유리 막 안에 갇혀있는 과거의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서 현대에 그 아름다움을 우리 식탁 위에 입혀본다고 상상해 보세요. 저만 아름답다고 느끼는 걸까요? 동의하시죠?